온 생이 근무시간인 사람이 작가라고 어디선가 본 것 같다. 도무지 어느 지면에서 봤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래전, 가슴 속에 각인되어 잊히지 않는 글귀……. 그러니까 작가는 출퇴근이 따로 없는, 불철주야를 가려선 안 되는 직업이란 말이다. 뭔가 엄청난 각오 없이는 어림없다는 차가운 조언처럼 서늘하게 가슴을 저미던 문장.

과연 나는 생애를 걸어 글을 쓰고 있는가? 반문해 보면, 어쩐지 명함도 내밀지 못할 것 같아 의기소침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글을 쓰고 있지 않은 순간에 느끼는 불안감이 더해져 난 이대로 괜찮을까를 몇 번이고 되뇌어 보곤 한다. 때때로 글이 풀리지 않을 땐 끊임없이 나의 자질을 의심하며 내가 작가이기는 한 건지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자괴감에 빠질 때도 있다.

기실 나의 꿈은 작가가 아니었다. 내 꿈의 마지막은 초등학교 일기장에 적어둔 패션디자이너라는 글자로 기억된다. 나의 고교 시절은 시험에 시달려 아무런 꿈을 꿀 수 없었고 대학의 캠퍼스에서도 관심사는 온통 직장을 가지는 것에 매몰되어 있었다. 모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벽부터 도서관에 앉아 수험서를 열심히 파고 있을 때, 오합지졸처럼 모여 문학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쩌다 선배의 꼬임에 넘어가 독토’(독서토론회의 줄임말)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하나같이 학과 공부에는 관심도 없고 미래는 더욱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만 중저음의 중성적 보이스 때문에 자꾸만 주목하게 되는 여자 선배를 따라 학교 정문 앞 육교 밑에 자리한 허름한 돼지국밥집까지 따라갔다. 그들과 함께한 순간에, 돼지국밥집은 우리만의 비밀 아지트 같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꿈 같은 것들이 조용히 끓어오르는 것도 같았다.

너 글 좀 쓰니?”라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대답했고, “그런데 시를 좋아해요라는 말을 덧붙이는 바람에 그길로 선배의 손에 이끌려 그녀의 자취방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나는 그날 은밀하게 키워온 그녀의 꿈을 보았다. 책들이 책꽂이를 넘어 겹겹이, 벽면을 타고 철옹성처럼 쌓여 있었다. 온통 책으로 둘러 쌓인 방, 책 외엔 정말 아무것도 없던 방. 나는 선배가 졸업 후 서울의 어느 출판사로 취직이 되었을 때까지도 몇 번 통화를 했었다. 통화를 할 때면 사회가 내겐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말들을 했던 것 같다. 작가는 그런 선배가 되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다 선배는 작가가 되었을까 궁금해질 때면 네이버 창에서 ○○○작가를 검색했다. 그러기를 몇 해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선배를 검색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노조문학상 수상 후 시집 한 권을 내기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듬해 소설가로 등단을 하면서 뭔가 단단히 엮인 것처럼 글쟁이로 살아가고 있다. 문학상 수상자를 확인하고 축하한다며 남편이 손을 내밀었을 때 나는 그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좀처럼 주어지지 않을 것 같은 기회들이 내게도 주어졌다. 텅 빈 한글 문서 위에 깜박이던 커서를 밤새 응시하다가 창가로 시퍼런 동이 터 올 때, 가랑비 젖듯 찬찬히 지면이 채워지던 순간의 희열이 생을 관통하고 있는 동안, 도무지 주어질 것 같지 않은 기회들이 내게도 주어질 것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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