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6월이다. 지난 5월 한달은 가뭄이었다. 얼마나 심한 가뭄이었는지 하늘빛정원의 꽃과 농작물들은 시름시름 강한 햇살에 타들어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렇듯 가뭄이 심한데도 아랑곳없이 건강하고 튼튼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들이 있었다. 그들의 생명력은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샤스타데이지, 금계국, 우단동자 등은 이 가문 상황에도 맑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반면에 상추, 고추, 토마토, 가지, 호박 모종 등은 끝부분부터 타들어갔다. 김용임여사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여기저기 목을 축여주느라 분주했다. "사람은 조금만 물을 못마시면 탈수현상이 생기는디 저것들은 또 얼마나 목이 마를 것이냐" 혀를 끌끌차시며 뜨거운 햇살에 노출된 그들을 염려하였다. 장미도, 독일붓꽃도, 원추리도, 특히 치자나무와 수국은 금세 빛을 잃었다. 며칠 전 수국을 세 개의 화분으로 선물받았다. 이번에는 태양에 정면으로 노출되는 곳이 아니라 적당히 그늘이 있는 곳에 옮겨 심었다. 땅이, 흙이 얼마나 많은 생명들의 터전이 되는지 시골에서 살아보니 더욱 몸으로 체감되면서 경탄이 저절로 나온다.
수국을 선물하신 영혼과 차를 한 잔 마셨다. 그가 말했다. "최근까지 나는 '그냥 살자'를 모토로 살았어요. 되는 대로, 나에게 오는 대로 살면 되지 않겠나 생각했죠. 그런데 최근에 생각이 바뀌었어요. 농장이라고 작은 공간이 있어 새벽부터 땀을 흘리면서 일하고 나니 그들과 소통하면서 느끼게 된 거죠. 어떤 것도 저절로 크는 것은 없더군요. 그래서 이젠 '정성껏 살자'라는 모토를 새로 정했답니다."
그는 참으로 부지런한 성정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가꿀 줄 알고, 책을 많이 읽지 않음에도 사유의 터전을 튼튼하게 갖춘 독특한 영혼이다. 필자는 만 권이라는 책을 통과하면서 새로운 사유의 공간으로 접어들었는데 그는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고 운동을 하거나 일을 하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바로 그가 말하듯 '정성껏 살아'가는 마음이 습관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나에게 질문한다. "나는 지금 정성껏 살고 있는가"
실존주의철학자 니체는 몸이 최고의 이성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사유할 수 있는 존재지만 그 사유를 몸을 통해 행한다. 말하자면 생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김으로써만 인간은 변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독한 가뭄에 참으로 갈증이 심하던 차에 새벽, 갑자기 후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너무나 기쁜 마음과 동시에 차의 창문을 열어두었다는 생각이 들어 열쇠를 들고 뛰어나갔다. 다행히 이제 막 소나기가 도착한 추령이어서 안전하게 시동을 켜고 창문을 닫았다. 칠흑 같은 어둠, 하늘빛정원에 둥지를 튼 길냥이 콩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콩이야! 비 맞지 말자. 어서 안으로 들어가서 자자. 이렇게 늦게 돌아다니지 말고!'
고요한 어둠 속, 내리는 빗소리 사이로 콩이를 향한 필자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꽃들이 피어나는 것도 정성껏, 생명을 키워내는 것도 정성껏, 내 곁에 있는 존재와 말을 섞는 것도 정성껏, 가뭄을 말끔히 씻어내주는 저 소나기도 정성껏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삶은 결국 내 생각의 발현이다. 내가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가가 행동으로, 물질세계로 그대로 나타난다. 그것이 곧 '나'이고 내가 사는 이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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